기억의 숲은 한산했다. 우리 팀만 그 숲에 있었다. 기억의 숲이라는 이름과는달리 기억하기 위해 방문한 사람들이 우리밖에 없었던 것이 조금 허전하기도했다. 숲에 들어가면 빼곡하게 노란 은행나무 300여 그루가 있다. 나무들 사이에는 회색 광이 나는 조형물이 있었는데 그곳에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제서야 기억하기 위한 발걸음이 우리만은 아니었음을 느꼈다.
노란은행나무 잎이 매년 자라나 주는 것에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매년 기억할 수 있도록 시들지 않고 자라나 주어 고마웠다. 은행나무 잎 말고도 주변에 푸른 잔디들과 빨간 열매들, 무지 더운 날에 솔솔 불었던 바람까지. 바다에 가라앉은 그들이 우리를 찾아 와준 느낌이었다. 팀원들 모두 한참을 숲에 머물렀다.
가만히 앉아 숲을 그대로 느낀 팀원들과 열심히 셔터를 누르며 이 숲 또한 기억하려는 팀원들. 모두 같은 마음으로 숲을 걸었을 것이다.
팽목항을 방문했다. 가는 차에선 시끌벅적하기보단 모두 조금 차분해진 분위기였다. 차에서 내려 팽목항 길에 올랐다. 저 멀리에 있는 등대를 옆으로, 길 하단에 쭉 시민들이 그리고 써준 벽돌화들이 있었다. 다큐를 찍으면서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우리밖에 없을까 봐 가끔 두려 울 때가 있다. 벽돌화들에 그려진 그림들과글을 보며 함께 기억하고 있다는 느낌에 안심이 되었던 기억이 있다. 등대까지꽤나 긴 길을 벽 돌화들이 묵직하게 지키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기억을 걷는 듯했다.
길 난간을 따라 매달아져 있는 리본들이 쎈 바람에 쉬지 않고 흔들렸다.난간 너머에는 너무 많은 걸 삼켜버린 ‘그 바다’가 눈치 없이 파도 치고 있었다.바다가 미워지는 날이었다. 아주아주 신중한 걸음으로 등대까지 갔다.등대에 도착해서는 떨리는 마음들이 느껴졌다. 밤이 되면 등대의 빛을 보고 얼른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들이 고스란히 내 마음에 닿았다. 우재 아버님을 만나러등대 길을 나서는 걸음도 최대한 느리게 걸으며 기억의 흔적들을 느끼려 했다.
우재 아버님이 계신 컨테이너에 들어가기 전, 무지 긴장되었다. 솔직한 마음을적어 보자면 우재 아버님을 어떤 마음으로, 어떤 말로, 어떤 모양새로 뵈어야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세월호를 생각하면 안타까움, 분노, 슬픔의 감정들이 마구 떠오르는데 우재 아버님은 얼마나 긴 시간 동안 그 감정들을 감당하시고 그 감정들을 품고 있는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만나셨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나도 마찬가지로 그런 감정들을 품은 사람으로서 우재 아버님을 뵈어도 되는 것인지 스스로 의심이 들었다. 시간을 길게 끌 수 없었기에 복잡한 마음으로컨테이너에 들어갔다. 길게 놓여있는 식탁 위로 예쁘게 깎인 접시 위 배들과자리마다 놓여있는 비타오백 음료수들이 보였다. 우재 아버 님은 우리를 어떤마음으로 맞이하려 하셨는지 정확하진 않지만 느껴졌다.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기재하진 않겠다..! 그치만 아름다운 마음인 건 확실했다.)
우재 아버님과의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었다. 긴장했던 마음과는달리 아버님은 유쾌하고 멋진 분이셨다. 무거운 이야기 속에서도 툭툭장난기를 발동하기도 하셨다.
이야기 중간중간 우리에게 밥을 해주고 싶다 하셨던 말씀이 기억에 진하게 남아있다. 팀원들이 점심을 먹고 팽목항에 가서 우재 아버님이많이 아쉬워 하셨다.
긴 시간 동안 우재 아버님과의 이야기를 마치고 컨테이너를 나섰다.차에 탈 때까지 우재 아버님은 우리를 계속 배웅해 주셨다.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차에 올라탔다.
쎈 바람에 흔들려도 날아가지 않았던 팽목항의 노란 리본처럼, 우리를 위해손수 과일과 음료를 준비해 주시고 따뜻한 배웅을 해주신 우재아버님의 마음처럼, 노란 잎이 떨어져도 봄에는 새잎이 자라나는 기억의 숲 나무들처럼. 나는 이들처럼 기억해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